AI 전환, 우리가 도운 건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2026. 09. 14. 김사랑

AI Culture Education

1편 "AI로 바뀐 건 업무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는 옆자리 동료가 덜 힘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될 것 같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혹시 못 읽으셨어도 따라오실 수 있게 배경만 짧게 정리합니다.

저는 우아한형제들에서 개발자를 길러내는 교육의 코치로 일하며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부딪혀봐야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로 개발을 전혀 모르는 동료 15명이 5주 동안 자기 현업 문제를 AI로 직접 해결해보는 ‘AI Dive Deep’을 열었고, 그 동료들이 스스로 만든 변화가 1편의 이야기였습니다. 1편 마지막에는 전담 TF가 꾸려졌다는 소식과 함께 두 가지 방향도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길로 갔습니다. 계획을 바꾼 건 숫자 하나였습니다.

손을 든 사람은 92명,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반복되는 일에 치인다"는 고충이 15명만의 것일 리 없었습니다. 같은 고충을 안고 있는 동료가 대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해져 수요조사를 열었습니다. 얼마나 신청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92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PM과 기획, 운영, 사업과 영업, 마케팅, HR, 디자인, 데이터 분석, CS까지. 거의 모든 직군이 걸쳐 있었습니다. 신청서에 적힌 어려움의 결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데이터 취합, 회의록과 보고서 자동화, 정책과 히스토리 확인, 손으로 관리하는 대시보드. 저마다 다른 일을 하지만 힘들어하는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92명의 직군별 신청 분포. 오른쪽은 직군마다 가장 많이 적힌 고충으로, 열 직군 중 여섯이 손으로 하는 반복 작업이었다.

손을 든 숫자 앞에서 막막했습니다. TF는 꾸려졌지만 다른 동료들은 본업이 따로 있어 직접 코칭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옆에서 문제를 쪼개고 첫걸음을 잡아줄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강의로 묶기에는 신청자마다 업무 맥락이 너무 달랐습니다. 회의록이 급한 사람에게 데이터 수집을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92명을 1:1로 맡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병목이 보였습니다. AI 도구는 이미 충분했고 모자란 건 옆에서 도울 수 있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AI 전환을 가로막는 게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이때 숫자로 처음 확인했습니다.

알려주는 대신 옆에 앉는 사람을 늘렸습니다

한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없다면 답은 하나였습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늘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AI 잘하는 사람을 강사로 세우면 되지 않나"라는 흔한 해법과 제가 하려는 것은 결이 달랐거든요. 옆자리 동료에게 AI를 알려준 적이 있는 분은 아실 겁니다. 두 달 뒤에도 그 동료는 번역기로만 씁니다. 도구가 없어서도 의욕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저 쓰던 대로 씁니다. 강사를 세우는 건 지식을 옮기는 일이라 이 습관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문제를 쪼개는 동안 옆에 앉아줄 사람이었습니다.

신청서에 적혀 있던 반복 업무의 고충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 가까웠습니다. 그 밑에는 자기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한데 편하게 물어볼 곳이 없는 상태가 있었습니다. 다들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음 사람을 돕는 구조가 실제로 동작한다는 것은 개발자를 길러내는 교육을 운영하며 이미 확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AI 도입보다 사람의 변화가 AI 전환의 본질이라고 믿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함께 자라는 AI 코칭 레벨1’입니다. 코치가 코칭을 직접 겪어보는 입문 과정입니다. 5주 동안 매주 평일 저녁 2시간씩 함께 모이고 페어별로 1시간을 따로 코칭합니다. 코치 두 명이 짝(페어)을 이뤄 동료 한 명(피코치)을 코칭합니다. 피코치는 코치가 옆에서 돕지만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평일 저녁의 워크숍 모습. 코치 페어와 피코치가 소그룹으로 둘러앉아 있다.

기수가 쌓일수록 코치가 늘고 그만큼 감당할 수 있는 수요도 늘어납니다. 한 사람이 전부 짊어지는 대신 여러 코치가 나눠 짊어지는 구조입니다. 1편에서 두 사람이 직접 하던 일을 이제는 이 시스템이 대신하는 셈입니다. 다만 이 구조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흐름을 움직이는 힘이 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코치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급여도 승진도 공식적인 인정도 없습니다. 동료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이 과정의 유일한 동력입니다.

규모를 키우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붙어 있는 시간은 줄이지 않으려 두 가지를 더 정했습니다. 하나는 코치 두 명이 피코치 한 명을 함께 맡는 것입니다. 한 명이 놓친 것을 다른 한 명이 짚어주고 옆에서 코칭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훈련입니다. 다른 하나는 페어를 맺을 때 AI를 쓴 경험의 깊이가 다른 두 사람을 일부러 짝지은 것입니다. 출발점이 다른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한쪽이 다른 쪽을 자연스럽게 보완하고 코칭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서로에게 배움이 됩니다. 수를 늘린다고 곁에 붙어 있는 밀도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어떻게 설계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돕는다’부터 다시 정의해야 했습니다

구조를 짜고 나니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를 것인가. 바꿔 말하면 돕는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 코치가 붙어서 피코치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그건 도운 걸까요?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피코치는 또 코치를 찾아야 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성공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피코치가 가져온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세션이 끝났어도 피코치 입에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될지 알 것 같아요"가 나왔다면 그 세션은 성공입니다. 반대로 문제가 깔끔히 풀렸어도 피코치가 코치 덕분에 된 것이라고 느꼈다면 그 세션은 실패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문제 해결 건수’가 아니라 ‘발언과 행동의 변화’에 두었는데, 이 과정에서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근거는 동기면담(Motivational Interviewing, 윌리엄 R. 밀러와 스티븐 롤닉, 『Motivational Interviewing: Helping People Change and Grow』)이라는 상담 방법론이 말하는 변화대화(Change Talk)입니다. 사람은 남이 설득해서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때 실제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이렇게까지 명확히 세워둔 건 동기면담이 교정반사(Fixing Reflex)라고 부르는 충동 때문입니다. 잘못돼 보이는 것을 곧장 바로잡아주고 싶어 하는 충동입니다. 돕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반사라서 선의가 클수록 참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결과입니다. 교정반사에서 나온 말은 일방적인 소통이 되고 일방적인 말 앞에서 사람은 점점 대꾸하지 않게 됩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은 그대로 두면 교정반사로 흘러갑니다.

이 결정이 왜 필요한지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코치는 4주차 회고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결국 급한 마음에 질문 없이 바로 해결책을 주게 되었어요. 쉽지 않네요." 답을 아는 사람일수록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성공을 ‘문제 해결’로 뒀다면 이 코치의 행동은 옳은 것이었을 겁니다. 성공을 ‘피코치의 변화’로 뒀기 때문에 이 코치는 답을 알려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성공의 정의가 피코치에게도 그대로 작동했다는 걸 확인한 건 5주 뒤였습니다. 한 피코치는 마지막 회고에 자신의 5주를 한 문장으로 적었습니다. "밥 지어달라는 사람에서 스스로 밥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성공의 정의를 피코치에게만 적용한 건 아닙니다. 코치에게도 대칭되는 결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코치를 모집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가 누군가를 코칭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이었습니다. AI를 잘 다루는 것과 남의 업무 문제를 진단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하도록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 처음이라면 누구나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을 설득으로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도 해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코치가 맡는 피코치는 한 명이면 되고 문제도 가장 쉬운 것부터 다룹니다. 혼자가 아니라 두 명이 함께 준비하니 부담이 나뉩니다. 무엇보다 5주 안에 실전을 세 번 하게 해서 앞 회차에서 부족했던 걸 다음 회차에서 고칠 안전망을 뒀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였습니다. 5주가 끝났을 때 모든 코치가 최소 한 번은 "되더라"를 겪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치가 먼저 "나도 할 수 있다"를 몸으로 겪어야 피코치의 입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코칭을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 5주에는 강의가 없습니다. 대신 손을 멈추는 법을 직접 겪게 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컨설턴트이자 교육자인 제럴드 와인버그(『Experiential Learning: Beginning』)는 사람이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라 직접 겪을 때 배운다고 했습니다. 경험적 학습(Experiential Learning)이라고 부르는 생각입니다. 코칭도 다르지 않습니다. "답을 알려주지 말고 기다리세요"라고 백 번 말해줘도 답을 참아본 적이 없으면 몸이 먼저 나갑니다. 그래서 코치들에게 원칙이나 이론 이름 등을 설명해 주지 않고, 매 주차를 먼저 경험하게 하고 해설을 뒤에 붙였습니다.

5주 워크숍의 시간 배분. 매주 120분 중 해설은 5분이고 참가자가 활동을 직접 겪은 뒤에야 온다.

코치들이 걸어간 순서 그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할머니에게 배달의민족 알려드리기

5주의 문은 짜장면이 엽니다.

"여러분의 할머니는 올해 팔순입니다. 스마트폰은 쓰시지만 카톡이랑 전화만 하시는 정도예요. 할머니 혼자 집에 계실 때 밥을 못 챙겨드시는 날이 많아서, 배달의민족으로 짜장면이라도 시켜드시게 하고 싶습니다. 배달의민족 앱은 이미 설치되어 있습니다. 30분 동안 할머니에게 배달의민족으로 짜장면 시키는 법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션의 진짜 목적은 ‘짜장면 시키는 법’이 아닙니다. 코치가 될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가르치는 사람의 버릇을 스스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소그룹이 먼저 각자의 방식으로 미션을 설계하는데 이 첫 설계에 그 버릇이 그대로 나옵니다. 주문 과정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흐름도를 만들어 냉장고 앞에 붙여드리겠다는 설계가 나왔고 "효도를 위해 카드는 내 것으로 등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전화하라고 하겠다는 설계도 나왔습니다. 30분 안에 주문을 성공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전부 틀린 답이 아닙니다.

첫 설계는 일단 그대로 둡니다. 워크숍은 방향을 틀어 각자 "내가 겪은 배움 중에 의미 있었던 경험과 별로였던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넘어갑니다. 그 차이를 만든 키워드를 페어별로 세 개씩 뽑는데 이날 나온 키워드는 ‘능동’, ‘눈높이’, ‘자율성’, ‘용기’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제 그 키워드로 같은 미션을 다시 설계합니다. 한 그룹의 재설계 기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용기를 드림. 누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아님." 이 그룹의 원안은 만일의 상황에 대처하기 좋도록 손주 계정을 드리고 대신 등록해두는 것이었는데 재설계에서 할머니 본인 명의로 계정과 카드를 직접 등록해드리는 쪽으로 뒤집었습니다. "할머니가 실패할 때 손주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면 도전이 어려우실까 봐"라는 이유였습니다. 계획은 가족들이 공복에 다 같이 모여 할머니 카드로 이것저것 시켜 먹어보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그날은 할머니가 쏘는 날입니다.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설계로 다뤘습니다. ‘용기’라는 키워드 하나가 첫 설계와 재설계 사이에 만든 차이입니다.

이 미션은 5주가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 한 코치는 마지막 회고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첫 주의 그 뜬금없던 할머니 미션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5주를 지나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이 뜬금없던 미션이었습니다.

문제보다 관계가 먼저인 첫 만남

2주차에 코치와 피코치가 처음 만납니다. 첫 주가 코치들만의 시간이었으니 피코치의 여정은 여기서 시작하는 4주입니다. 이 첫 만남에도 강의는 없습니다. 대신 미션이 있습니다.

워크숍 한두 시간 전 코치와 피코치에게 서로 모르는 비밀 미션이 각각 다른 쪽지로 갑니다. 코치는 "말하는 시간 줄이기", "열린 질문 던지기", "답을 기다리기" 같은 동기면담의 관계 맺기 도구 중 딱 하나만 골라 30분간 몰래 실천합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러 개 하려고 하지 마세요. 딱 한 가지만 집중해 주세요." 피코치에게는 다른 미션이 갑니다. "코치가 무엇을 의식적으로 시도하는지 마음속으로 관찰하되, 묻거나 입 밖에 내지는 마세요."

30분 동안은 일도 AI 얘기도 꺼내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만 합니다. 코칭 첫 시간을 이렇게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동기면담이 말하는 변화의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잘 형성된 관계가 변화의 문을 열고 문제 정의도 코칭 기술도 그 위에서만 작동합니다. 코치에게 간 비밀 미션이 전부 관계 맺기 도구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30분이 지나면 관찰을 공개합니다. 피코치가 관찰한 것을 말합니다. "코치님, 오늘 유독 제 말을 안 끊고 기다려 주시던데요." 코치가 자기 미션을 공개하고 그 시도가 대화를 어떻게 바꿨는지 한 문장으로 함께 짚습니다. 코치는 도구 하나를 의식했을 뿐인데 상대의 말이 길어지는 걸 직접 봤고 피코치는 그 변화를 자기 입으로 코치에게 돌려줬습니다.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 사람이 함께 겪고 함께 되짚는 겁니다.

서로를 알았으면 이제 문제를 정의할 차례입니다. 그룹이 피코치의 문제를 파악해 문제 정의서로 만드는데 여기에 한 번 더 미션이 숨어 있습니다. 정의서가 완성되면 코치 한 명이 그것을 들고 짝 그룹으로 건너가 5분 안에 설명합니다. 짝 그룹은 답이나 해결책을 주지 않습니다. "잘 이해되는 부분 하나, 이해 안 되는 부분 하나"만 피드백으로 돌려줍니다. Anthropic의 프롬프트 작성 가이드에 "맥락 모르는 동료에게 보여줘도 따라 할 수 있는지 점검하라"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사람의 문제 정의에 그대로 옮긴 겁니다. 자기 그룹 안에서는 통했다고 느꼈던 정의를 다른 그룹 앞에 풀어놓는 순간 빈 곳이 드러납니다. 그 발견이 목적이라 정의서를 쓰는 동안에는 "나중에 다른 그룹에 설명하게 된다"는 사실을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리 알면 거기에 맞춰 정리하려 들고 그러면 발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큰 목표를 ‘첫 5분’으로 줄이는 법

이렇게 정의한 문제를 들고 5주 안에 실전 코칭을 세 번 합니다. 실전에서 코치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과제의 크기입니다. 피코치들은 대개 목표를 크게 들고 옵니다.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싶다" 같은 식으로요. 마음은 이해하지만 큰 목표는 시작도 못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코치는 그 목표를 첫 코칭에서 바로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쪼갭니다.


실전 코칭 현장. 코치와 피코치가 문제를 쪼개고 있다.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과 과학 저술가 로버트 풀(『Peak: Secrets from the New Science of Expertise』)은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의 바로 바깥을 시도할 때 가장 잘 배운다고 했습니다.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너무 쉬우면 늘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니까요. 코치는 답을 주는 대신 세 가지만 묻습니다. "혼자서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뭐예요? 아직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은 건요? 그 둘 사이에서 딱 한 걸음만 더 가본다면요?" 그래도 목표가 크면 마지막 한 문장을 돌려줍니다. "그걸 제일 작게 쪼개면, 첫 5분은 뭘 할 거예요?"

한 피코치는 3주차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할 때는 덩어리째 크게 보고 있어서 어려웠구나. 하나씩 밟아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고는 "오늘 바로 가져가서 해볼 수 있는 게 너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담당 코치는 그 피코치의 과제를 일부러 "관리자 화면에 자동으로 로그인하는 것 하나"로 좁혔다고 했습니다. 이것만 되면 나머지는 응용해서 잘하실 거라고 봤다고요.

작은 성공이 쌓이면 큰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1편에서 배운 것과 같습니다. 달라진 건 그 쪼개는 일을 이제 저 혼자가 아니라 코치들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답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법

3~4주차의 페어 코칭 훈련은 코치가 자기 자신과 싸우도록 짠 시간입니다. 개발자들이 짝을 지어 한 명이 코드를 짜고 다른 한 명이 옆에서 봐주는 페어 프로그래밍에서 빌려왔습니다. 키보드를 잡고 눈앞의 작업에 집중하는 사람이 드라이버, 옆에서 큰 그림을 보며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내비게이터입니다. 두 역할은 자주 바꿉니다. 여기서는 코치 두 명 중 한 명이 코칭을 이끄는 드라이버가 되고 다른 한 명이 옆에서 관찰하며 짧게 훈수하는 내비게이터가 됩니다. 10분마다 역할을 바꿔 네 바퀴를 돕니다. 코칭을 "하는" 경험과 옆에서 "관찰하는" 경험을 한 세션 안에 둘 다 얻습니다.

이 훈련의 핵심은 "잘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관찰할 수 있는 행동 하나로 좁히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옆에서 훈수도 할 수 있고 됐는지 안 됐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 행동 하나를 만드는 활동이 따로 있습니다.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다른 조에서 훔치기’입니다. 규칙은 하나입니다. 훔칠 수 있는 건 상대가 지난 코칭에서 실제로 시도한 것뿐입니다. 코치라면 질문 방식이나 침묵을 견딘 것, 피코치라면 "모르겠다"고 바로 말해본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료나 도구, "편안해 보였어요" 같은 인상은 훔칠 수 없습니다. 다시 시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훔쳐온 것을 페어끼리 두 가지 기준으로 다듬어 그날의 훈련 포인트로 확정합니다. 나중에 잘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가, 10분 안에 시도하기에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은가. 에릭슨이 의식적인 연습의 조건으로 꼽은 것들입니다.

그렇게 세운 목표 하나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인정하기 3회 이상, 각 코치 최소 1회. 무엇을 잘했는지가 문장에 들어간 것만 센다. 근거 없이 "잘하고 있어요"로 넘어간 횟수 0회.

"칭찬을 많이 하자"가 아니라 "무엇을 잘했는지가 문장에 들어간 인정만 카운트"입니다. 어떤 페어는 "20분 동안 인정하기 5회"라고 목표를 세웠다가 해보고는 스스로 "10분 동안 1회"로 난이도를 낮췄습니다. 의식적인 연습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된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에서 잡히는 건 목표로 세운 행동만이 아닙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답을 알려주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까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 그룹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코치: "개발 코드 한번 볼까요?"

피코치: "그거 어떻게 보죠?"

코치: (나도 모르게 피코치의 노트북을 가져가 직접 열어주려다 멈춤)

멈춘 손을 두고 세 사람이 같이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코치였으면 여기서 열어주는 게 아니라 ‘개발 코드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서 이끌어줬어야 했다"고요. 앞에서 말한 교정반사가 손끝까지 와 있던 순간입니다. 그 코치가 그날 세션의 다음 행동으로 적은 한 줄은 이랬습니다. "알려주기 전에 먼저 묻는다."

이게 코칭이 맞을까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과정 중반에 운영진 스스로 근본적인 물음에 부딪혔습니다.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게 코칭인데 정작 현장에서는 코치가 AI 활용법을 알려주는 티칭의 비중이 자꾸 커졌습니다. 3주차 운영 회고에 이미 "일부 조에서 코칭보다 티칭 비중이 높다"는 관찰이 남아 있었습니다. 4주차에는 한 운영진이 정면으로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게 코칭이 맞나요? 결국 AI 티칭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요."

프로그램의 이름을 겨눈 질문이었습니다. 숨기지 않고 다뤘습니다. 결론은 이상을 지키되 현실을 인정하는 쪽이었습니다. AI 영역에서는 코치가 전문가가 아니어도 함께 탐색하며 코칭할 수 있고 코칭의 핵심은 피코치가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 것이라고요. 동기면담에서는 모든 답이 상대에게 있다고 보고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의식해서 줄이지만 이 과정의 AI 코칭은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워크숍에서 코치들에게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4주차에는 코치가 자기 코칭을 "1점은 완전한 티칭, 5점은 완전한 코칭"으로 스스로 진단하고 코칭 전과 후로 두 번 매겨보게 했습니다. 티칭이 나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균형을 가장 잘 담은 건 한 코치가 남긴 비유였습니다. "운동은 본인이 하는 거지만, 자세를 옆에서 봐주는 것이 코칭이에요."

마지막 인터뷰에서 ‘변화’를 묻지 않았습니다

5주 여정의 마지막 워크숍은 피코치의 4주를 듣는 인터뷰로 시작합니다. 참가자들은 그 자리에서야 인터뷰가 있다는 걸 처음 압니다. 안내는 짧습니다. 지난 4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자리라는 소개, 그리고 한 문장. "목표는 하나예요. 그 일들을 코치가 아니라 피코치님의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

코치 한 명이 인터뷰어가 되고 다른 한 명은 서기가 되어 피코치의 답을 원문 그대로 받아 적습니다. 질문은 4주 전에 쓴 사전 질문지를 함께 읽는 데서 시작해 기록을 함께 넘기며 "뭔가 됐다 싶은 대목"과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한 피코치 자신의 행동을 묻는 순서로 이어집니다. 마무리는 늘 같은 질문입니다. "4주 뒤에, 혼자서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첫 행동 하나만 꼽는다면요?" 큰 목표를 첫 5분으로 쪼개던 질문이 여기까지 이어진 겁니다. 지켜야 할 규칙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코치는 피코치의 변화를 대신 말해줄 수 없습니다. 대놓고 "뭐가 달라졌나요"라고 묻는 것도 변화를 대신 말하는 일입니다. 준비된 소감이 나올 뿐입니다. 대신 기록을 함께 읽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면 달라졌다는 말이 피코치의 입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인터뷰어 가이드. 어디에도 ‘변화’라는 단어가 없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한 피코치는 문제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는데도 함께 쓰던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치한테 물어보는 걸 클로드한테 똑같이 물어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모르는 걸 클로드에게 바로 물어보게 됐다." 질문의 대상이 코치에서 AI로 옮겨갔습니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관계의 변화였습니다.

옮겨간 건 질문의 대상만이 아니었습니다. 질문하는 방식도 함께 옮겨갔습니다. "AI가 결과물을 만들어줘도 결국 내가 한 번 더 질문을 해야 그다음 디렉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는 태도를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코치가 피코치에게 하던 ‘답 대신 질문’을 이제 피코치가 AI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야 방금 오간 말들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하고 싶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끝낼 거다", "이미 해봤다" 같은 말을 동기면담에서는 변화대화라고 부른다고요. 인터뷰 질문이 그 말이 나오도록 설계돼 있었다는 것도 이때 처음 공개합니다. 겪은 다음에야 이름을 알려주는 순서입니다. 첫날의 짜장면도 2주차의 비밀 미션도 같았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그룹별로 방금의 인터뷰 기록을 다시 훑으며 변화의 말을 찾고 그 문장을 굵게 표시합니다. 코치는 그 옆에서 자기가 던진 질문이 이끌어낸 문장이 하나씩 굵게 변하는 걸 지켜봅니다. 마지막 실습은 코치가 굵게 남은 문장 하나를 골라 피코치에게 자기 말로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이제 혼자 해볼 만하다고 느끼시는 거네요" 하고요. 변화대화는 붉은 석탄 같아서 불씨는 이미 상대 안에 있고 숨을 불어주면 불이 되지만 그냥 두면 꺼지기 때문입니다.

돕는 사람이 자랐다는 증거

이 과정을 거쳐 정말 돕는 사람이 자랐는지 코치들의 기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4주차와 마지막 회고에서 그대로 옮긴 문장들입니다.

"목요일 저녁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즐겁다고 느꼈다."

"제가 하고 싶던 말을 피코치가 스스로 꺼내셨을 때, 소름이 돋았어요."

"이제 2:1이 아닌 1:6으로 스터디 세션을 열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디자이너분들 6분 대상으로 수업 예정."

“이 과정이 제게 해준 것보다, 페어 코치의 존재와 태도가 제게 더 많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을 반납한 자리가 즐거웠다는 말도, 상대가 스스로 답에 도착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순간도, 혼자 여섯 명 앞에 서겠다는 계획도 설계할 때 기대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5주간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나"라는 물음에 서로 무관한 코치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AI 기술이 아니라 기다리는 능력이 생겼다고, 지식이 아니라 태도를 배웠다고요. 그리고 그 배움은 과정이 아니라 옆에 있던 페어 코치에게서 왔다고 적었습니다.

코치가 정말 자랐다면 그 증거는 피코치의 변화에서도 나와야 합니다. 코칭 세션이 끝날 때마다 피코치에게 같은 질문을 5점 척도로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지금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나요?" 한 피코치의 답은 사전 설문 2점에서 시작해 실전 1차 3점, 2차 4점, 3차 5점으로 세션 하나를 지날 때마다 정확히 1점씩 올랐습니다. 한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피코치 12명 전체의 평균도 사전 설문 2.58점에서 마지막 세션 뒤 4.17점으로 올랐습니다. 물론 모든 곡선이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피코치는 4점에서 시작해 3점으로 내려갔습니다. 개발팀의 권한 승인이 필요한 사내 배포 작업이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습니다. 성공을 문제 해결이 아니라 변화에 둔 이유가 오르는 곡선과 내려가는 곡선 둘 다에서 확인된 셈입니다.

피코치 12명의 자기효능감 변화(5점 척도). 평균은 2.58점에서 4.17점으로 올랐고, 조직의 벽에 막혀 내려간 곡선도 하나 있다.

한 피코치는 예전에 몇 번 시도하다 엉켜서 묵혀뒀던 작업을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해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전과 달랐던 건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 이전에도 하려고 했지만 해야겠다는 임계치를 넘지 못했었는데, 코치가 있다는 사실이 이걸 빨리 해야겠다는 마음을 만들어줬다. 막상 해보니 어렵지도 않았다." 코치 두 명이 피코치 한 명을 맡는 구조를 정할 때는 계산하지 못했던 효과입니다. 그 변화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같은 피코치의 마지막 문장이 말해줍니다. "지금은 궁금하면 일단 해본다. 예전엔 ‘궁금한데? 궁금하군.’ 하고 끝냈다."

마지막 회고에서 한 코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코칭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팀원들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피코치의 성장은 피코치의 의지가 99%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1% 정도는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1%에 큰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과정을 마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 마음은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보상도 없는데 다음 기수 코치 신청이 31명 들어왔습니다. 기대했던 15명의 두 배였습니다. ‘AI 코치가 잘 어울릴 것 같은 동료’를 적는 칸에는 22건의 추천이 쌓였습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65명입니다

5주가 끝나면 수료한 코치는 ‘AI 코치’로 불립니다. 그 자리에서 다음 문이 하나 열립니다. 피코치에게는 다음 기수의 코치가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묻고 코치에게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변화를 돕는 다음 과정인 레벨2를 권합니다. 강제하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3주차에 "덩어리째 크게 보고 있어서 어려웠구나"라고 말했던 그 피코치는 다음 기수에 코치로 돌아왔고 레벨2가 열리자 첫 번째로 신청서를 냈습니다. 코치였던 사람은 그다음 기수의 운영진이 됐습니다. 받은 사람이 돕는 사람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 기수를 지나며 쌓인 AI 코치가 지금 65명입니다. 92명이 손을 들었을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이제 92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숫자가 아니라 이 구조가 몇 바퀴 돌면 닿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동료들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조직에서 비슷한 시도를 해보려는 분이 있다면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자발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스스로 모이게 한 그 마음이 있다면 나머지는 작게 시작해도 됩니다.

마지막 워크숍의 맨 끝에서 저는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말해준 변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코칭을 잘해서 그랬을까요, 워크숍에서 대단한 걸 배워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다 마음입니다. 돕고자 하는 마음.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계속하려고 합니다. 이걸 사람 중심 AX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마음이 든다면 언제든 함께하세요."

사람 중심 AX(AI 전환, AI Transformation)라는 이름 아래 그리는 흐름은 "어, 이게 되네?"에서 시작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를 지나 "우리 같이 해봐요"에 닿는 것입니다. 1편이 첫 번째 말의 이야기였다면 이 글은 두 번째 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은 이미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자리 동료가 덜 힘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번에도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이 이제 저 혼자가 아닙니다.

  • "어, 이게 되네?"를 AI로 함께 만듭니다. 돕는 사람을 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