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

Nov.15.2021 이 원미

Education

안녕하세요. 테크코스교육개발팀 이원미입니다. 우테코 3기도 마무리할 시간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네요.
기수가 쌓일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지난 10월 29일, 크루들이 밤낮으로 고생하며 완성한 프로젝트의 최종 데모데이를 진행했습니다.

게더타운으로 진행한 데모데이에 많은 분이 참여해 서비스 구경도 하고, 여러 질문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 )
크루들과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뜻깊은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데모데이에 아쉽게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데모데이 사이트에서 구경 가능합니다.

3기부터는 레벨 5라는 한 달의 기간 동안 지금까지 진행한 미션들과 프로젝트를 통해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학습한 내용을 복습하기도 하고 추가로 심화 학습도 하면서 이력서 작성과 면접 연습 등 취업을 위한 활동들을 하게 되는데요.
레벨 5를 준비하기 전,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했는지 돌아보기 위해 레벨 4 글쓰기 주제를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으로 정했습니다.

크루들은 어떤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꿈꾸고 있을까요?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자극이 되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코다(김윤정)의 글

처음 프로그래머를 꿈꾸게 된 명확한 이유가 있다. 프로그래밍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거나 아니거나, 어떤 언어를 쓰거나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은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한 애플리케이션을 전 세계가 쓰기도 하고, 특정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확 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의 삶은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굉장히 붕 뜬 이상주의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한때 MBTI 검사를 하면 감정을 나타내는 수치인 F가 빵점이 나올 정도로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기본이 이성적인 사람이다. 흔히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부정적이고 “현실적으로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형용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일인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렇다 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목격하면서 내 가치관이 변했다.

그렇다고 붕 뜨면서 말도 안 되는 꿈만 꾸는 것은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 곰곰이 고민해보았을 때 꿈을 현실로 만들 방법 중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리소스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프로그래밍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프로그래밍에 대한 역량을 키워야 할 때다. 선한 목적과 꿈이 실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다만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이 없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멀리 오래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괜히 부푼 꿈만 말하면서 상응하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내 가치관이 불분명했던 적은 없다. 나에게 프로그래밍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보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좋은 도구이다. 그 때문에 내 블로그 이름도 FromCoding 코딩으로 시작되는 무언가를 암시하는 이름으로 정했다. 깃헙에 소개 글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에 스미는 좋은 기술로 사람이 사람을 돕는 문화를 꿈꾸는 개발자입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은 일상에 침투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다. 무언가가 많은 사람의 일상이 되면 그것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마치 배달의 민족이 배달문화를 만들고 당근마켓이 또 하나의 문화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선한 문화라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쑥스러운 마음에 굳이 밝히지 않았던 코다라는 별명에 내재된 뜻을 말해보려고 한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라고 소개했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코딩이 다가 아닌 개발자’라는 나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코딩이 다가 아니라 그것이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개발자, 그래서 항상 선한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개발자가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의 삶이다. 일단 코딩이 다가 아니라면 적어도 코딩은 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 글이라고 나름의 인생관을 적어보자면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행복하자고 사는 삶은 좀 시시한 것 같다. 언젠가는 끝나는 인생이기도 하고 행복 자체가 목적이라면 행복의 그릇을 조금 줄인다면 금방 행복해질 수 있다. (나만 해도 좋은 사람들과 때 되면 밥을 먹을 수 있기만 해도 매우 행복….) 또 나 혼자 잘 살기에는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를 거치고 있는 예비 프로그래머이지만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열심히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하다. 그 과정이 재미있는 건 덤이다.



웨지(성시형)의 글

저는 자신을 ‘우테코 최고 수혜자’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법, 직업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는 인생관까지 바꾼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우테코에서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어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거라 생각합니다!

우테코에서 얻은 공부하는 법

학습 메타인지에 대한 중요성

학습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공부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어떤 학문에선 학교에서 설계한 커리큘럼대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엔드 개발은 학습해야 할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공통적으로 알아야 할 필수지식은 있지만, 그 이후는 자신이 마주한 문제상황에 맞는 학습을 해야합니다. 학습 메타인지는 효과적인 학습 로드맵을 세우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웨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계는 공부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요즘은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개념(이해해야 할 것), 사실(외워야 할 것), 연습(해봐야 할 것)을 미리 적어보는 습관을 기르고 있어요!

Learning With Doing

‘책으로만 배운 연애’라는 말이 있죠. 여러 매체를 통해 습득한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보려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로 배운 부분과 적용하는 현장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적용과 학습을 병행해야 합니다. 일단 무작정 적용해보고 안 되면 학습 테스트도 만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코치들과 크루들을 물고 늘어지고! 왜 안 되지 징징거렸던 시간만큼 실력이 느는 것 같습니다.

빠른 피드백과 빠른 수용

우테코는 회고 중독입니다. 피드백을 강조하고, 피드백 받을 기회를 다양한 창구로 제공합니다. 빠르게 학습하고 적용하면 빈틈은 반드시 발생합니다. 빠른 피드백은 아교처럼 이 공백을 꼼꼼하게 메꿔줍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건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한 전제조건은 스스럼없는 분위기라는 거에요. 방어적인 태도는 건전한 피드백이 오가는 것을 막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라는 신뢰,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피드백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제가 그런 피드백을 받고 개선한 경험을 하고 나니, 상대가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실한 이야기를 해주려 노력하게 되고요.

Comfort zone에 머물지 않기

근성장의 기본원리는 점진적 과부하입니다. 근육을 한계에 다다르게 해 상처입혀야 새로운 근세포가 자라납니다. 예전에 50kg의 바벨을 들었다고 해서 계속 50kg를 드는 것은 현상 유지 이상의 효과가 없습니다.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익숙한 방식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풀 수 있던 알고리즘, 밥 먹듯이 만들던 웹 어플리케이션, 잘 알고 있던 CS 복습을 통해서는 ‘공부했다’는 정신적 포만감은 느낄지언정, 진짜 성장하긴 어렵습니다. 어려운 분야에 도전하고 깨어진 경험이,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토대가 됩니다. 어려운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친구를 보면 ‘발리고 오라’고 격려해 주는데요, 제 입장에선 성장을 바라는 응원이라고요.🤪

좋은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기

인간의 의지는 나약합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라면?? 혼자선 20분도 집중 못 하지만 밖에 나와서 우테코 크루들과 함께 공부하는 순간은 다섯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재밌게 할 수 있답니다. 좋은 환경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누군가에겐 눈 내리는 소리도 들릴 조용한 환경, 누군가에겐 커다란 모니터가 갖춰진 환경. 저는 제가 좋아하는 환경을 찾았고 자신을 거기에 위치시킴으로써 그리 힘들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테코에서 바뀐 직업관

예전에는

법에서 정의한 직업의 의미를 찾아보니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속적 소득활동’ 이네요. 저도 우테코에 오기 전 직업을 볼 때 소득에 집중했습니다.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나요. 게임, 영화, 책, 노래, 방송… 직업은 재밌는 일을 해줄 수 있게 해주는 돈💰을 벌 수 있는 작업에 불과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재밌었지만 ‘최고로’ 재미있진 않았습니다. 직업으로 삼을만한 기술 중 가장 재밌긴 했죠. 열심히 배우고, 이걸로 취업하고, 그리고 거기서 얻은 소득으로 재밌게 놀아야지… 작년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저는 1년 정도 일을 하다 우테코에 참여했는데요, 그러면 일하면서 그 돈으로 놀았던 기간은 행복했느냐? 열심히 일하고, 집에선 취미생활을 하고, 휴가나 주말에 놀러 가기도 하고… 잠깐잠깐 재밌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리 행복하진 않았어요. 다들 힘들지만 한 번씩 즐거웠던 경험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 아닐까요? 원래 인생은 장미빛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테코에서 자기의 업에 최선을 다하는 코치들을 만나고, 본인 업무 외 시간에 리뷰이에게 좋은 피드백과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리뷰어들과 소통하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크루들을 보면서 조금씩 감화되어 갔습니다. 동경했고 닮아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모의면접 날에

우테코 코치 씨유와 장난치던 어떤 하루를 기억합니다. 2차 모의면접 날이었습니다. 모의면접을 준비하던 씨유를 보고 덩실덩실 들어가 "면접자 성시형입니다!!" 하고 들어가니 잘 받아주시더군요. 즉석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장난식 면접을 진행하던 중,

🤖씨유bot : 얼마를 주면 이직하실 건가요?>

😏나 : 실제 면접이라면 이런 말 안 하겠지만, 솔직히 천만 원 정도 더 주면 당연히 옮겨야죠? ㅎㅎ 씨유는 안 옮기실 건가요??

🤖씨유bot (갑자기 매우 진지하게) : 저는 근무하는 환경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중요해서요, 천만 원 이천만 원 정도에 직장을 옮길 것 같지 않네요.

😮나 : …

로봇답게 진지한 태도로 말하는 씨유를 보며 그 진지한 모습에서 진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워졌어요. 예전의 저라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신기하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레벨 2에는 ‘사랑하는 동료들’과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아 가고 있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 전의 마인드로 가볍게 말해버린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해봐야 변명이라는 마음 중간에서 어부버부애배배 하다가 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 뭐지?)

저는 그 이후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정에 몰입하는 지금, 크루와 코치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짧지 않은 인생 중 가장 행복합니다. 베짱이인 줄 알았는데 워커홀릭이었을 줄이야. 개발 이야기 할 때가 제일 재밌고 제가 아는 것으로 남을 돕는 순간이 가장 뿌듯합니다. 그저 ‘계속적 소득활동’에 불과한 무엇인가에 행복의 열쇠가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어떤 영화를 본 날에

그리고 최근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시사회 표를 얻었는데요, 프로젝트다 미션이다 매우 바쁘던 터라 ‘내가 이걸 볼 땐가’ 반신반의하며 참석했습니다. 그런 의심을 한 방에 날릴 정도로 재밌게 영화를 봤습니다. 큰 성공을 거둔 타다,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타다, 법령으로 사업이 금지당한 타다… 새롭게 사업을 정비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영화엔 구성원들의 희노애락이 그대로 담겨있었고 거기엔 단순히 ‘내 수입원이 위험해’ 이상의, 일에 대한 몰입과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백엔드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저렇게 몰입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건 어떤 기분일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 전엔 제가 일하고 싶은 직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리쿠르팅 데이와 우아한테크코스를 마쳐보자. 지금 개발이 재밌으니 회사가서도 재밌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는 일터를 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 열정 있는 사람들이 꼭 개발직군이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용어로 소통하고 뜻을 맞춰가고 가치를 일궈내는 과정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즐겁게 일하기 위해 취업할 때 한 가지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일까? 조직에 그런 사람들이 많을까? 최근에 우아한형제들 CEO 김범준님 특강에서도 김범준님의 ‘배민다움’을 여쭸는데, 조직의 중심이 되는 사람의 답변이 궁금했습니다. 리더조차도 회사의 단편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진실을 찾아보려 열심히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면접에 가면 어쩌면 당돌한 질문을 자주 할 것 같습니다.

우테코에서 얻은 인생관

아니 무슨 거창하게 인생관까지? 네 저도 민망하긴 한데! 하고 싶은 말, 해도 되는구나. 도 새롭게 얻은 인생관이라 시원하게 적어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체감했어요.

사람은 관계 속에 사는구나

좋은 사람들 속에서 지낸 지도 9개월이 되어갑니다. 저는 원래 아싸 체질입니다. 한 번씩 또라이 같아도 내향적이고 말을 아끼는 편이었습니다. 또 눈치가 빨라 분위기를 빨리 읽고 몸을 잘 사렸구요. 하지만 눈치 보지 않아도 날 좋아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제 성격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 즐겁고 재밌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맞추던 과거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믿고 먼저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테코 코치진들에게 또 사랑하는 크루 친구들에게 큰 감사를 느낍니다. 지지받고 지지해주는 관계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귀한 인연을 길게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연들 또한 귀히 여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주사위 같지만, 어떤 면을 보여줄 지는 내가 정할 수 있구나

저는 스스로가 아주 많이 바뀌었다 느끼지만, 사실 저라는 근본은 그대로일 겁니다. 바뀌기 전의 모습도 저고, 바뀐 후의 모습도 저입니다. 사람은 주사위처럼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전에는 세상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가, 이번에 우테코라는 새로운 조명을 만나 감춰져 있던 측면을 드러내게 된 것일 거에요.

잠시 숙연해질게요, 주의하세요🤫 개발을 시작하기 전, 사는 것이 즐겁지 않아 인생이 지겹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어제보다 더 나은 나!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겨우 남들처럼 이라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10개월간의 기억을 잃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측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또 그때의 저를 좋은 환경으로 끌어냈다면, 그래도 어두운 주사위 면을 보여줬을까요?

인생의 쓴맛도 단맛도 보아가며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주사위 면을 찾았습니다. 이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행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개발을 시작하고 우테코에 도달하고 수료를 앞두기까지는 여러 번의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떤 면으로 살아갈지는 행운에 맡기지 않으려 합니다. 행운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모습, 지금의 모습으로 지내기 위해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 즐거움을 저만 누리지 않도록 나누는 노력을 해보려 합니다.

꾸준한 것이 이기는 구나

꾸준함을 찬양하는 말이 정말 많죠. 어쩌면 상투적이고 식상할 지도요. 그러나 저는 굳이 뻔한 말을 한 번 더 적으려 합니다. 제가 거머쥔 행운들도 꾸준함의 결과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우테코 자기소개서에서 물어본 ‘1년간 몰입했던 경험’으로 재수 경험을 적었습니다. (대학교를 중퇴해서 민망했지만요. 하하) 그 1년은 하루하루 쉬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던 시절이었어요. 중퇴한 시점에서 재수는 의미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꾸준했던 날들이 돌고 돌아 기회를 잡게 해주었고요.

저는 개발과 관련해 설명을 잘하는데요, 원래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작년에 말을 너무 못해서 스스로 답답해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터 고쳐진 거지?’ 생각해보니 우테코에 들어와 쉬지 않고 개발과 관련된 수다를 떨어댄 것을 통해 훈련된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이 별로 없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null null하네 라고 말했던 순간(구구가 이건 empty()죠 라고 정정해줌), TCP 3 way handshake를 배운 후 지나가는 크루들에게 맥락 없이 "씬!(syn)" 외쳐대던 순간들이 떠오르네요. 받아주신 크루들 감사합니다.

그 뿐 아니라 스스로 강점이라고 느꼈던 영역들은 모두 꾸준하게 뭘 해온 것에서 파생한 것이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저 분야에서 꾸준했구나.’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 꾸준함을 존중합니다. 자연스럽게 열등감도 ‘나도 꾸준하면 되겠구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

제가 꿈꾸는 프로그래머의 삶이 느껴지셨을까요? 저는 몰입하며 일하고 싶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으며,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제가 받은 것을 나누어주는 프로그래머를 꿈꿉니다.

읽으면서 우테코가 사람 하나 살렸네 싶으실 것 같네요. 🥳 저는 우테코가 좋습니다. 빛나는 우테코에 제가 입성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저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테코라서 좋습니다.

앞으로도 빛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이에게 빛을 비춰주려 노력하며 살려 합니다. 우테코는 큰 절 받으십시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케이(박유진)의 글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요

누군가 왜 개발자의 길을 택했는지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상상을 화면 속에 그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프로그래밍이라는 세계로 이끌었어요.
아, 자발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중 for 문을 이용해서 다양한 형태의 삼각형을 터미널 창에 출력해보고, 아스키 문자를 이용해서 나만의 게임 맵을 만들며 프로그래밍에 푹 빠졌어요.
손재주가 없는 제겐 터미널 창이 그 무엇보다 유용한 도화지였습니다. 마치 화가가 된 기분이었어요.
이게 "개발자가 되어야겠다." 라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꿈꾸던 개발자의 삶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도메인의 특징을 파악해야 합니다.
면접 준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취준생이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하는지 살펴봐야 해요.
블랙잭 게임을 만들 때는 게임 종료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승리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죠.
똑같은 프로그래밍인데, 알아야 할 지식은 너무나도 달라요.
그리고 그 지식을 이어 비즈니스 로직을 형성하고 도메인 구조를 설계해야 하죠.
도메인을 만드는 그 순간만큼은 개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개발과 함께 경험한다는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열심히 도메인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눈에 보이도록 화면에 표현하여 서비스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만큼 즐거운 게 있을까요?

새로운 목표

프로그래밍이 재밌고 다양한 도메인을 설계하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막상 저는 개발에 서툴렀어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1년 전만 하더라도 for 문과 while 문으로 간단한 실행 파일 하나 만들 줄만 알았습니다.
그저 개발자의 매력에 빠져들어 설렘을 느낄 뿐, 무언가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개발자분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동기부여와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는 첫 오픈소스 기여를 경험 할 수 있도록 저를 지도해주었고, 우아한테크코스에서 크루들은 본인의 생각과 지식을 끊임없이 공유했어요.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을 마주치면 함께 헤쳐나가는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죠.

어느새 저는 지금 그토록 바라던 도메인 설계를 하고, 그 도메인을 이용해 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도화지에 제 아이디어를 마음껏 그려나가는 사람이 되었죠.
1년이라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주변 분들과 팀원이 없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성장이었어요.

내가 꿈꾸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

우테코에서의 경험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생각을 화면에 구체화했던 경험처럼 제게 또 다른 목표를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오픈소스 커뮤니티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때나 우테코 크루들과 함께 개발할 때처럼 말이죠.
관심 있는 주제에 관련된 서비스를 만들거나 프로젝트에 기여했을 때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개발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듬직한 멘토.
함께 개발하는 분들에겐 서로가 도움을 주고 믿을 수 있는 존재.
상상을 현실화하는 것도 좋고, 다양한 도메인을 설계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함께 탐구하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개발자가 되려고 해요.
프로그래머란 개발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성장한다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며 누군가의 귀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가슴 뛰는 일도 없잖아요?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일

과연 나는 최종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요.
우테코에 참여하고 있는 크루라면 익숙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네요.

최종적으로 오픈소스 메인테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개발자들과 함께 개발하고, 개발자 지망생에겐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는 짜릿함을 제공하고 싶어요.
다른 개발자로부터 받은 그 선물을 제 다음 개발자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만약 직장 때문에 병행이 어렵다면 실력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다가 은퇴를 해서라도 이 꿈을 이룰 겁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개발하고 싶네요.
그리고 그렇게 만든 프로젝트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면, 제겐 그것만큼 행복한 프로그래머로서의 삶도 없을 듯합니다.

모두 각자가 꿈꾸고 있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삶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이런 꿈을 꾸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소롱(최솔지)의 글

나의 오랜 연인에게

내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가? 잘 모르겠다. 내 목표는 그냥 밥벌이였다. 어영부영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그냥 그랬다. 일단 졸업만 하면 뭐라도 되겠거니, 내 한 몸 정도 건사하고 살겠거니 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라고 하기엔 제법 호락호락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다 보니 또 살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취업이라는 목표가 너무 비대해져서 진실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얼렁뚱땅 개발을 시작했고, 굉장히 하고 싶은 것처럼 말해야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것 같다. 왜 ‘같다’냐면 이제 나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까지 취준만 해야 하며,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취업인지 개발자로서의 성취인지, 무엇도 아닌 이름으로 안주하고 싶었던 건지.

이 글을 쓰기 위해 자소서부터 되짚어 보았다. 얘 소롱아, 너는 대체 어떤 패기로 들어왔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그때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라 그런 바람을 담았던 모양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개발을 시작했던 때로 돌아갔다. 얘 솔지야, 왜 개발자가 되려고 했니. 영업 관리 직무 지원동기를 쓰다가 마우스를 던졌던 기억이 났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동기일랑 있을 리가 없었다. 덜컥 싸피에 붙어서 도망치듯이 떠났다. 얘, 왜 하필 거기로 도망쳤니. 4학년이 되고 조바심이 날 즈음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어떨까 막연히 생각했다.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일단 게임회사 설명회부터 찾아다녔는데, 철학과 출신 개발자가 있다는 말에 혹했다. 멋있어 보여서. 바로 실행된 꿈은 아니었으나, 결국 나는 간지를 찾아 여기까지 온 셈이다.

요즘 나는 밥상머리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불안정하다. 지금 이 고생을 하며 밥 벌어 먹고살겠다고 아득바득하는데 결국 태초의 목표가 진짜로 멋이나 부려보겠다는 것이었다니.. 이렇게 노간지인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억울해서 다시 눈물이 난다.

단단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당당하게 나를 한 사람의 개발자라고 소개할 수 있는 그런 단단함. 나는 늘 나를 포장해줄 어떤 것에 집착해왔다. 공부, 친구, 화장품, 옷, 허울뿐인 말들이 나를 견고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나를 소개할 방법은 실력밖에 없어 지금까지 갖춰왔던 무엇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처음 ‘Hello World!’를 봤을 땐 굉장히 설렜었는데, 그냥 변수 하나 입력하면서도 벌벌 떠는 바보가 됐다. 그래도 나름 종종 빠져들기도 하고, 재밌을 때도 있고, 좀 뿌듯하기도 한데 계속 하면 안 되나 하고 살살 달래온 것도 한계였는지 모른다. 푹 찌르면 터질듯한 알맹이들만 내던져진 기분이다.

날씨가 추워졌다. 곧 겨울이 온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면 다비치의 ‘나의 오랜 연인에게’를 듣는다. 평생 단단한 개발자가 될 수 없다면, 언젠가 오래된 연인같은 내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반짝반짝 빛났고, 지금은 엇갈리고 힘들다. 그럼에도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하염없이 지난 시간 속에서 늘 같이 있는 그런 존재가 되면 좋겠다.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선명하지 않은 먼 길도 함께 갈게." 나는 늘 내 인생을 털그럭거리는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기다리는 건 트랙의 고지에서 미끄러지는 가속도일지, 고장난 열차로부터의 추락일지. 이런 모든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일이 되기를 바란다. 비록 내 몸은 단단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데는 문제없다.



다니(이다은)의 글

어쩌다 코딩을 접하게 됐지?

19살 때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단지 성적에 맞춰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됐던 순간,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현실적인 문제로 기존의 꿈을 접고, 경영학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그때 아빠가 컴퓨터공학과로의 전과를 추천해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고, 컴퓨터 다루는 걸 좋아했어서 경영학보다는 컴퓨터공학이 더 맞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경영학에 관심이 적었던 나로서는 컴퓨터공학이 훨씬 재밌어 보였다. 그렇게 전과를 결심했다.

전과를 하기 전에 미리 전공 수업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C언어를 수강했다.
난생 처음 접하는 개념들이 너무 어려웠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개발자 출신의 아빠가 많이 도와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배울 수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전과에 성공했다. 스스로 결실을 맺어 정말 뿌듯했다.
19살의 나는 큰 좌절감을 맛봤는데, 20살의 나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

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지?

전과를 하자마자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모두가 개발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진출할 수 있는 길은 다양했다.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기겠지라는 생각으로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당시 가장 집중했던 건 전공 공부와 동아리 활동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기업의 공모전에 참가하게 됐다.
주제는 IoT였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나는 뭐든 도전하는 걸 즐기는 편이어서 친구의 공모전 참여하자는 한마디에 바로 준비했다.
운이 좋게도 예선에 통과하고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서 수상 욕심이 들기는 했지만, 구현을 완료하는 걸 목표로 임했다.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그리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큰 재미를 느꼈다.
의도대로 프로덕트가 동작하는 걸 볼 때마다 신기했다. 밤을 새며 개발했는데, 피곤함보다는 성취감이 컸다. 이 맛에 개발하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결선에서 우승했고, 혜택으로 방학 인턴십을 얻었다.
그렇게 다가오는 방학에 곧바로 인턴으로 일을 했다.

해당 기업은 네트워크 장비 회사였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무작정 도전했다.
따뜻한 팀원분들 덕분에 회사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러면서 개발자분들이 일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실무는 학교와 꽤나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팀 문화를 접하며 개발자 문화가 참 좋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개발자가 되고 싶고, 돼야겠다라고 다짐했다. 개발자로 살면 적어도 내가 즐기면서 일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언제 행복을 느끼지?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은 다르다.
나는 단순하게는 맛있는 걸 먹거나 잠을 푹 잤을 때 행복하다.
한편, 꾸준히 노력했고 이에 따라 성취감을 느꼈을 때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더 행복하다.
하지만 단순히 인정받는 건 싫다. 확실한 근거가 받침될 때 인정받아야 한다.
결국 내 노력의 성과로 인정을 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행복하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정말 좋다.
시시콜콜한 얘기든지 개발에 관한 얘기든지, 어떤 말이든 나누는 게 재밌다.

나는 내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크게 대학교와 어학연수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나에 대해 고찰할 시간도 많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생각을 넓혀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지?

종합해보면 꾸준하게 노력해서 성취하고, 나름 인정도 받으며, 사람들과 편하게 소통하는 개발자로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렇지만, 꾸준하게 노력하는 게 전제니깐 지치지 않고 몰입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컨디션 관리도 꾸준하게 하는 개발자여야겠다.

어학연수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라고 적었다.
이 영향인지, 기회가 있다면 외국에서 일하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도 되게 새롭고 짜릿할 것 같다.
다만 지금보다 실력이 더 성장했을 때 경험하고 싶다.

지금까지 글에서 이런저런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나열했다.
사실은 수식어가 다 필요 없다.
단순히 가장 나다운 개발자가 되고 싶다.
어떤 모습의 개발자든 결국에는 나니깐.